뉴스 주소(url) | https://www.junggi.co.kr/article/articleView.html?no=29070 | ||
---|---|---|---|
출처 | 중기이코노미 |
최근 여성기업가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각종 통계를 보면 여전히 국내 여성창업가 비율은 30%를 밑돌고 있다. 이 중에서도 요식업·도소매·소상공인을 빼고 나면, 기술창업 비율은 채 10%도 되지 않는다.
중기이코노미가 만난 여성스타트업포럼 이정희 대표는 여성창업가가 마주하는 사회적 걸림돌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가장 큰 문제는 여성기업가들이 가지고 나오는 사업아이템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이해도가 낮아, 투자 심사에서부터 비즈니스로 연결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여성스타트업포럼은 이렇게 사업 시작에서부터 막막함을 느끼는 여성창업가를 위해 탄생했다.
출장차 참석한 콘퍼런스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여성스타트업포럼은 2019년 2월 이정희 대표가 몸담고 있던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 업무차 영국 런던으로 출장을 가면서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고 한다.
“런던시에서 주최한 다이버스티 서밋(diversity summit)에 참여하게 됐는데, 마침 그날 주제가 여성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성기업, 여성투자자들의 여러 사례들을 모아 시너지를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 서밋을 보게 된 거죠. 당시 우리나라에도 기업들과 함께하는 세미나는 많았지만, 대부분 사업설명회나 정부 지원사업에 대한 설명회, 정부 지원사업 Q&A, 정부·지자체·기관이 기업 이야기를 듣고 제안받는 자리가 대부분이라 아쉬웠었거든요.”
특히 이 대표는 콘퍼런스에 참석한 기업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고 한다.
“콘퍼런스에서 생경했던 점은 기업 스스로 성장의 주체로서 고민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브렉시트(Brexit)가 한창 이슈였는데, 참여한 기업들이 영국이라는 국가와 런던을 위해 뭘 해줄까 고민을 깊게 하던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다시 한번 느꼈죠. 기업이 성장하면 국가가 살아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성장의 주체가 돼야 하겠다고 말이에요. 저 역시 그런 주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서울창업허브에 지원금을 받아 서울여성스타트업콘퍼런스를 만들었고, 2020년부터는 행정안전부 실패박람회 사업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좀 더 결속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작년 3월 사단법인 발족식을 하고, 같은 해 5월에 본격적으로 설립을 한 것이 지금의 여성스타트업포럼이다.
여전한 유리천장…‘여성창업가’의 가치 알린다
이정희 대표는 여성스타트업포럼의 의장이면서, 시드앤파트너스라는 액셀러레이터의 대표다. 업무상 기관에서 창업 멘토링을 하거나 교육, 심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남성들 위주로 돼 있고, 그 사이에서 여성기업이 치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안타까웠다고 한다.
“비즈니스적으로 결코 치이는 아이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비즈니스적으로 치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들이 많았어요. 문제는 여성기업들이 가진 사업아이템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겁니다. 왜 이 아이템이 사업이 돼야 하는지 남성들은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많았죠.”
여성기업가들이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육아 ▲교육 ▲여성 관련 제품 및 서비스 등이다. 하지만 대다수 심사위원이 남성이다 보니 여성창업가의 사업아이템을 이해하는데 충돌이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일례로 생리컵이나 성 관련 제품들이 나오면 자칫 성희롱 발언으로 연결될까 두려워 심사위원들이 질문을 아예 하지 않거나, 성인지적 관점을 생각 안 하고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심지어 집에 애는 누가 보냐는 질문도 여전히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불과 2달 전에는 폐경 후 여성 호르몬 감소 문제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늦추거나 예방하고, 심리적인 케어를 해주고 싶어 하던 여성기업가에게 ‘그런 건 돈 없는 여성들이 겪는 문제 아니냐?’라는 질의도 있었죠.”
이런 잘못된 인식이나 문제들로 인해 심사점수는 당연히 높을 수가 없고, 결국 투자로 이어지지 않아 좋은 아이템인데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비즈니스로 연결될 기회가 차단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여성기업들이 하는 사업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가치가 높고, 결과적으로 성공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한다. 경제적 이득을 얻지 않더라도 사회에 꼭 필요한 비즈니스들인데, 낮은 성 인지로 인해 묻히는 것은 국가적 손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여성 특유의 겸손 미학이 사업적으로는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딩에서 경쟁할 때, 남성기업가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표현도 거침없이 잘해요. 그런데 여성들은 자조적이고 약간 샤이하게 대응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희 포럼에서 강연을 요청할 때도 분명히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아직 그런 수준이 안된다’라며 나서지 않는 분들도 꽤 많아요.”
결핍과 차별이 ‘점프업’의 기회로…한계를 넘다
이정희 대표가 여성창업가를 위해 일한 지는 5년이 됐다. 그전에는 국립대의 행정직원으로 12년간 일을 했었다. 산학협력 관련 일을 하며 기업의 성장, 기술 사업파트, 기술거래부터 창업동아리와 교육센터 만드는 일까지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꿀보직’으로 불리며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학교직원에 안주하지 않고 스타트업 대표로, 또 여성창업가를 위한 포럼의 의장으로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던 계기는 계약직 직원으로서 느꼈던 한계 때문이었다고 이 대표는 고백한다.
“계약직 직원 중에서도 말단이 저였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계약직에 대한 차별이 심했죠. 심지어 일이 많다고 투덜대면서도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저에게는 일을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어요. 여기서 머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나은 포지션을 잡기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1년에 100시간씩 온라인 특허공부를 하면서 성과를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어 이 대표는 석박사 과정에도 도전했다.
“어느 날 산학협력단 직원 한 분이 직원들 앞에서 회계교육을 하더라고요. 강의 후 명함을 받아서 봤더니 회계학 박사였어요. 그때 생각했죠. 이런 자리에 올라가려면 석박사 학위가 있어야 하겠구나 말이에요. 그 해에 바로 석사과정에 들어갔어요.”
그는 정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공공정책 쪽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발의하는 여러 정책에 대한 조사나 분석, 제언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사학위는 행정학을 수료했다. 현재 정책 쪽으로 좀 더 포커싱해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여성창업 정책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한다.
2~3년 차 여성창업가가 머무는 ‘공간’이 되기를
여성스타트업포럼을 설립한 지도 1년이 지나고 있다. 단 한 명의 회원 없이 이사진 6명만으로 시작했는데, 작년에 회원 수 100명을 돌파하고, 올해에는 180명이 됐다. 처음에는 여성창업가들을 모으자는 것이 취지였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실제로 무엇을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고 한다.
이를 위해 포럼 내 자문위원과 이사진은 벤처기업협회와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본부장, 대학교수 등 여성정책 관련 일을 하거나 정부기관에 있는 임직원들로 채웠다. 포럼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외부로 전달이 돼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면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창업가들이 밖으로 나오는 데 덜 주저하도록 지지기반을 마련해 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중 2019년부터 시작한 사례공유는 많은 여성기업가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여성창업가로서 앞으로 닥쳐올 많은 문제에 대해 선 경험과 선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실제로 문제가 발생해도 스스로 벤치마킹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이에 매월 2명의 여성창업가들을 초청해 강연하고 있다.
재작년에는 정부 지원사업 심사위원들의 여성 비율을 늘려달라는 제언을 해 통과시키는 등 성과도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는 9월에는 행정안전부·기술보증기금·대성창업투자·임팩트스퀘어와 함께 여성스타트업 IR 대회를 부산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정책포럼도 함께 진행할 계획인데, 여성창업 관련된 정책과 현안에 대해 논의할 방침이다.
이외에도 이 대표는 여성 전용 트랙들이 좀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여성기업가들이 많이 생겨야만 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심사위원들을 위한 성인지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정부에 제언할 예정이다.
“차별 발언인지도 모르고 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심사위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중요 부분만 전달해도 성 인지 감수성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고 좀 더 각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대표는 여성스타트업포럼이 모든 여성기업이 거쳐 가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중에서도 2~3년 차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최근에 여성창업가 커뮤니티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이건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커뮤니티의 이사진이나 셀럽들은 이미 성공한 기업가들이거나 몇십 년 동안 기업을 운영하는 분들이에요. 이분들과 신생기업가 사이에는 공감대 형성이 전혀 안 되거든요. 지금은 세대가 다르고, 트렌드와 전략이 다른데 예전 성공담만 들어서는 최근 창업가들이 가지고 있는 이슈에 대해 잘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이 딱 2~3년 차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출처 |
중기이코노미